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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리뷰-동서악회세미나&음악회[두 세계의 접점에 서서]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4-12-27 14:35:51

두 세계의 접점에 서서

2024 동서악회-소피아뮤직위크 국제교류 세미나와 음악회

세미나: 20241119() 오후 5:00 예술가의 집

음악회: 20241121() 오후 7:30 한국 문화의 집

 

땅의 소리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는 불가리아에 대한 이미지는 특정 음식에 국한되어있어 보인다. 지나치게 부족한 정보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편협한 선입견은 대상에 대한 유연한 접근을 막고, 심지어 왜곡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그 대상과 가까워질 기회를 박탈하고, 나 자신도 제한된 시각에 가둔다. 그래서 언제나 선입견을 벗고 대상을 진실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불가리아에 대한 시각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그 첫 실천으로 불가리아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단 첫 문단부터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가리아에는 160만 년 전에 인류가 있었고, 44천 년 전의 호모사피엔스 혹은 네안데르탈인으로 추정되는 턱뼈가 발견되었으며... 인류의 기원으로까지 올라가는 그 땅이 품은 시간은 곧 인류의 기록이었다.

지난 시간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평면에 투영되어있고, 우리는 그 단면 위에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 또한 과거의 소리가 켜켜이 쌓여 현재라는 평면에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렇게 대지가 품은 고유한 울림은 그 땅을 밟고 선 사람의 마음과 동조하여 리듬을 일으키고 생명력을 더한다. 이것이 우리가 민속음악을 연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입에서 귀로, 귀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민속음악은 사람들의 소리이자, 곧 땅의 소리이기도 하다. 특히 불가리아의 소리는 태곳적 에너지를 품고 있기에 흥미와 관심을 더욱 불러일으킨다. 우리음악을 연구하는 동서악회가 불가리아의 음악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교류하며 탐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국제교류 세미나

동서악회는 소피아뮤직위크와의 교류의 일환으로서 지난 20241119예술가의 집에서 ()음악미학연구회와 함께 한국과 불가리아 창작음악에 나타나는 전통성과 현대성이라는 주제의 국제교류 세미나를 가진 것은 이러한 관심과 흥미의 실천이다. 소피아 국립 음악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에밀리아 콜라로바 교수를 초청하여 불가리아 전통과 음악에 대한 전문성을 확충하고, 또한 국내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음악학자 중 한 사람인 이민희 박사로부터 한국 창작곡과 전통의 연결에 대한 의견을 더하여, 불가리아, 전통, 창작음악, 현대성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담았다.

먼저 콜라로바 교수가 불가리아 작곡가들의 창작음악에서 나타나는 전통과 현대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불가리아의 음악에서 전통과 현대성의 조화는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고 전제하며, 이 둘을 동등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러한 가운데 국가적 상황과 국제적 관계의 영향을 받으며, 이에 따라 세대의 차이를 보인다고 언급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는 서유럽의 음악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였지만, 이후에는 민족주의와 전위적 음악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럼에도 세대를 막론하고 민족적인 품위를 담는 것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 클래식의 보편성과 불가리아 전통의 조화로운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세대와 시대의 변화에도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불가리아의 창작음악은 국가와 세계에 균형 있게 관심을 기울이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불가리아와 같은 크지 않은 나라는 이러한 방향이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이민희 박사가 최근 발견되는 한국 창작음악과 전통의 연결 경향에 관한 소고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는 과거의 음악가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위해 오음음계, 전통장단 등을 사용했지만, 일상에서 전통음악을 듣지 못한 1980년생 이후부터는 앞 세대와 달리 어린 시절에 들었던 음악을 인용하는 것이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방법으로 인식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근에는 전통 퍼포먼스를 총체적으로 활용하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고 언급했다. , 과거에는 전통음악의 선율이나 리듬 등 음악적 요소를 작곡의 소재로 삼았지만, 이제는 전통음악의 연행 자체를 통째로 작품 안에 가져와 다매체 형태로 만든다. 발표자는 이에 대해 한국 고유의 전통음악적 양상이나 속성이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음악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인지가 작품에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인지는 전통이 어떤 의식이나 관념, 정체성으로서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음을 짚었다. , 이러한 경향에 대해 전통이 과거의 산물이 아닌, 음악을 구성하는 아이디어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두 발표자의 설명은 세대에 따라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과 전통에 대한 활용이 다르다는 것이 한국과 불가리아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통의 의미에서는 차이를 보이는데, 불가리아에서는 여전히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음악을 일상에서 접할 기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민희 박사는 1980년생 이후라고 했지만, 1960년생인 진은숙도 어린 시절에 전통음악을 듣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2022년 제네바 작곡 콩쿠르 우승자인 작곡가 김신은 그해 3월 필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을 전통의 관점에서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 세미나는 전통에 대한 작곡가들의 인식과 이를 수용하는 관점과 방법, 그리고 전통과 현대성을 연결하는 두 나라 작곡가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는 등 다각도로 고민하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러한 논의는 작곡가들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음악학 연구의 폭을 더욱 넓힐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두 발표 내용이 연결점이 부족하여 논의가 분리되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동안 동서악회가 한국과 불가리아에서 진행한 음악회에서 발표된 작품을 토대로 한 섹션이 마련되었다면, 이 네 가지 키워드가 더욱 유기적으로 논의되었을 것이다.

 

국제교류 음악회

세미나가 두 나라의 전통과 현대를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로 논의하는 자리였다면, 이틀 후인 1121한국 문화의 집에서 열린 ‘2024 동서악회-소피아뮤직위크 국제교류 불가리아 국립예술원 전통음악 듀오 초청 연주회는 이를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자리였다. 이번 공연은 이복남 동서악회 회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페터르 크라이체프 주한불가리아 대사의 축사로 무게를 더했다. 플로브디프 국립예술원 교수인 카발(kaval) 연주자 바실 바실레프와 민요가수 데니차 바실레바의 초청 또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특히 한국의 전통을 수용하는 창작음악과 불가리아의 전통음악, 그리고 한국의 작곡가의 불가리아풍작품 등 세미나에서 언급했던 네 가지 키워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프로그램으로 흥미를 더했다.

첫 곡은 김준호의 <한거사락>(閑居四樂, 2024)으로, 스승인 고()강준일 작곡가와 함께 여주작업실에서 보낸 일상을 표현했다. 풀 뽑기, 산책, , , , , 그리움 등의 주제가 있지만, ‘여유로운 삶이라는 곡의 제목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준다. 복잡하기보다는 단편적이고, 그래서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극적 시나리오보다는 지금의 조화로운 소리에 집중한다. 대금의 전통적이고 변화무쌍한 소리와 클라리넷의 깔끔하고 명료한 소리가 두 세계의 오묘한 접점을 만들고, 첼로는 이들의 어우러짐을 음악적으로 고양시킨다. 빈약한 음향에 아쉬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는 ’()이라는 글자를 생각하면 오히려 여백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이어지는 이효원의 <()중진담_봉산탈춤>(2020)은 양반을 풍자하는 봉산탈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곡으로, 1악장은 술 취해 노는 모습을 풍자하고, 2악장은 오히려 자신도 그렇게 놀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약간의 대본이 있는 현대무용과 함께 시청각적인 음악극으로 구현되어 의미를 구체화했다. 편성은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 타악기뿐이지만, 모두 다른 카테고리의 악기여서 서로 다른 성질의 소리가 각자의 층위를 형성한다. 따라서 대위적으로 들리면서도 유기성과 거리를 둔 현대성이 감지되었다. 작곡가는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양상으로 표현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판을 만들었으며, 이를 활용하되 과하지 않아 위트가 넘치면서도 안정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병사 이야기>를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극적인 시나리오보다는 현실적인 심리 표현에 집중되었다는 점에서 <병사 이야기>와는 다른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전반부 마지막 곡은 김광희의 <불가리아풍의 세노야 세노야’>(2024), 1970년에 작곡된 노래 <세노야 세노야>를 가야금과 해금, 그리고 불가리아 전통 목관악기인 카발이 함께 했으며, 불가리아 민요 가수가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다. 특히 두 나라의 전통악기가 자신의 스타일과 상대의 스타일을 모두 소화하면서, 두 민속음악의 접점을 시도했다. 이 시도의 성공은 상대방을 타자로 인식하는 이국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은 것이 주효했으며, 자연스러운 합주와 변주는 두 나라 혹은 세계의 민속음악이 수렴된 하나의 지점을 가리키고 있음을 암시했다. 한 가지, 민요가수에게 기대했던 불가리아 스타일의 변주를 듣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반면에 뛰어난 한국어 발음을 들려주었는데, 가사 표현에 중점을 둔 듯하다.

후반부는 카발 독주 혹은 카발과 보컬의 이중주로 정통 불가리아 민속음악 일곱 곡이 연주되었다. 불가리아의 여덟 지역 중 로도피, 트라키아, 피민, 숍 등 네 지역을 중점으로 들려주었다. 카발의 발음 기전은 리코더와 유사하며, 음색은 리코더보다는 거칠다.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서양음악 용어로 말하자면, 제한된 음정의 음계로 만들어진 선율, 그리고 이를 장식하는 전타음, 멜리스마, 비브라토 등의 다양한 꾸밈음 등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꾸밈음과 리듬에 따라 각 곡에 서로 다른 정서가 부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류의 소리

이러한 분석적 청취는 불가리아 음악이 우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과 불가리아의 민속음악에는 공통되는 지점이 있음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이는 앞서 김광희의 작품에 의해서도 알 수 있었으며, 또한 이틀 전 세미나를 통해 얻은 음악적 인사이트였다. 이렇게 동서악회의 국제교류 행사는 여러 논점들을 이론적으로 연결하면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두 땅의 소리를 하나로 이끌었다. 그리고 인류의 소리의 원점으로, 그리고 음악의 이데아로 수렴하고 있다.

 

|송주호(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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